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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성의전화
댓글 0건 조회 5,318회 작성일 04-06-2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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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2004.6.4 뉴스메이커

[가정환경보고서]그러나 우리는 고독하다

지난 5월 중순 "한국남성의전화"에 50대 중반의 ㄱ씨가 찾아왔다. 지난해 퇴직한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는데, 경제력을 상실하고 나니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내 요구로 퇴직금 중 절반을 떼어 가게를 차려주었더니 몇 달 후부터 ㄱ씨가 가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고 별거할 것을 요구했다. 급기야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얻어 나갔다. ㄱ씨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왜 가장인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전통적인 가부장권의 붕괴에 대한 한국 남성의 의식이 짧은 기간 내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남성도 상당수다. 특히 갈등과 괴리감을 느끼는 연령대는 40대 이상이다. 어려서부터 사회적-제도적-교육적으로 남성 중심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탓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아내와 자식들에게 소외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법률상담소 2003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이혼상담은 40대가 가장 많고 50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갈등을 이유로 한 이혼상담의 경우 맞벌이나 부업 등으로 아내의 경제권에 대한 기대치는 상승한 반면, 남편의 가부장적 인식에 따른 아내의 직업활동에 대한 구속과 간섭, 그리고 경제권 억압은 여전히 남아 부부갈등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곽배희 한국법률상담소 소장은 "2002년과 비교할 때 아내의 부당한 대우를 호소한 남성의 비율이 증가했는데,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남성의 경우 아내의 헌신과 인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내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남편을 대우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것에 대한 분노를 폭력이나 성적으로 제압하려는 남성도 있다.


남성 중심 분위기에서 성장한 탓
가부장적 시스템은 남성의 육체노동이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토지경제체제나 농경사회, 또는 신분사회에서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가 자본주의사회, 시민사회, 민주사회로 이동하면서 가부장적 시스템의 존재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성의 우월감이나 가장의 권위-체면을 내세우면 아내와 자녀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가부장적 가치는 남성이 경제를 독점하던 시대의 산물이므로 지금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며 "경제구조는 양성이 평등한데도 가치관은 여전히 불평등을 기대하는 남성이 심각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치관을 변화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양성평등은 이미 대세가 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력 향상, 여성부 신설 등으로 여성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여성 정치인과 CEO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16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도 17대 국회에서 재입법 추진된다.

법의 개정은 이제야 이루어질 조짐이지만 가정에서의 "가장의 특별한 권위"는 이미 존립할 기반을 잃은 지 오래다. 양성평등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족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 재산계약을 체결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 부부 재산계약은 민법 제820조(부부재산의 약정과 그 변경)에 규정돼 있는 제도. 결혼 전 부부간의 계약을 통해 자유롭게 결혼 후의 재산관계를 정하는 것으로 최근 들어 신세대 부부를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로 남편의 명의로 재산을 관리하던 관습과는 크게 달라진 양상이다. 이 역시 가부장적체제보다 양성평등에 무게를 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요즘엔 아내로부터 학대와 무시를 당한다며 호소하는 남성도 적잖다.



지난해 한국남성의전화에 의뢰한 상담건은 모두 2,800여 건. 그중 여성에 의한 남성 폭력이 1,142건에 달했다.

이옥 남성의전화 대표는 "과거 여성이 남편의 폭력과 외도, 고부갈등으로 고통을 받은 것처럼 요즘은 아내의 폭력과 외도, 장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부갈등 대신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많아진 것은 부양능력이 없어진 사위에 대한 장모의 구박이 원인이 되기도 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손자-손녀를 대신 키워주는 장모가 많아지면서 장모와 사위의 접촉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다.

40대 중반 회사원인 ㅁ씨는 "아내가 홈쇼핑 책자로 얼굴과 머리를 여러 차례 사정없이 때려 머리에 혹이 나고 눈을 다칠 뻔했다"며 "너무 원통해 아내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ㅁ씨는 아내가 사과하면 화해하려고 했는데 사과는커녕 이튿날 장모가 와서 자신에게 욕을 퍼붓고 뺨을 때린 후 아내까지 데려갔다. ㅁ씨는 분한 마음에 그날 밤 병원 응급실에 가서 혹이 난 머리에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서를 뗐다. ㅁ씨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아내와 장모가 날 무시하는 것"이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가부장질서의 파괴와 양성평등은 여성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다. 남성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여성이 사이좋게 나누어 지자는 의미라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의 아버지들은 "가장콤플렉스"와 "장남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살아왔다. 아버지가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모든 가족구성원을 책임졌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눈물을 보여서도 안 됐고, 자기 몸이 부서져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40대 과로사가 많은 것도 한국의 아버지 어깨에 얹어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입증한다. 물론 한국 남자는 부엌에도 얼씬거리면 안 됐다.


부부 재산계약 체결 부부 늘고 있어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가족 내 새로운 양성평등적 질서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아버지들이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 2001년 발족한 "딸사랑아버지모임"도 그 중 하나다. 전체 회원 수는 340명에 달하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는 30여 명 정도다. 이 모임의 총무인 천성관씨는 "딸, 아들 차별 말고 평등하게 사랑하며 건강하게 키우자는 것이 취지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이 시대 아버지가 가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지 말고 아내와 나눠 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모임의 주축은 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30대 후반~40대 남성이다. 대부분 가족과 가까워지고 싶어도 방법이나 계기가 없어 홀로 고민하다가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주제토론을 벌이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른 아버지상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한다. 천성관씨는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가족구성원이 서로 존중하며 사랑한다면 인생 전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많은 남성이 뒤늦게 깨닫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아버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보다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옥 남성의전화 대표는 "여성이나 모자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은 반면 아버지나 부자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하다"며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에게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육하는 아버지교실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후 박사는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 박사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남성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게 필요하다"며 "다른 이들과의 부부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라"고 조언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